기억의 묘표에 분노하다.
by 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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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병


 퇴근길을 터벅터벅 걷다보면 어물쩡하게 우리 집이 보이게 된다. 멀리서 보이는 집의 야경은 대부분이 짙은 어둠이다. 요즘 농사일이 바쁠때라 부모님도 늦게 들어오고 막내동생은 학원때문에 더 늦게 들어온다. 옆집들과 가로등은 밝게 빛나고 그 사이에 혼자 어두운 적막한 우리집. 뭐 내 퇴근길 기분과 비슷해서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 이상한녀석이 이 적막을 방해한다. 녀석을 처음 봤을때 나는 경계했다.
 여긴 좁은 동네라서 서로의 알고 모를일까지 킁킁- 서로가 가벼이 알고 있다. 게다가 새로운 것이 나타날 때에는 그것이 먼저 자기 존재를 알리는게 이곳의 '법'같은 것이었기에 예고도 없이 나타나는 존재에 대해서는 경계를 해야한다고 배웠다. 헌데 이 녀석은 자신이 경계 대상인지도 모른것도 모자라서 떡하니 내 퇴근길을 방해하며 피하기 힘든 웃음과 함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때,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침착하게 생각했고, 일단 후퇴 하기로 생각했다. 전략을 세운뒤에 대응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줍잖게 행동을 취했다가는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실제로 내 둘째 여동생이 이녀석과 비슷한 놈에게 당한적이 있다. 어릴적에.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기며 녀석을 뒤로 한채 집으로 들어서려고 했는데 돌발상황이 일어났다. 경계는 했지만 뭔가 '위험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등을 내줬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녀석이 갑자기 달려들어 내 종아리를 밟았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대로 멈춰 선채 고개를 돌려 바지 종아리를 보았다. 바지 종아리엔 흙이 잔뜩 묻은 발자국이 두개가 나 있었다. 몸을 완전히 돌린채 녀석을 바라보니 여전히 웃고 있었다. 바지를 더럽혔기에 당연히 화가 났다.
 성큼성큼 다가갔다. 내 살기를 느끼지 못한건가. 여전히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왜 이런 짓을 했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침묵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언어니라. 나를 경계하게 하고 바지를 더럽히고 화를 나게한 이 녀석에겐 말을 하지 않아야 대화를 할수 있다.
 긴 침묵이 흘렀다. 보통 난 집에 6시 40분이면 들어가서 옷을 갈아 입는다. 하지만 귓속의 노래가 여러번 바뀐것으로 보아서 7시는 족히 넘은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덜무너진 담벼락과 버려진 창고, 쌓여진 거름덩어리들이 더 진하게 보였다. 고개를 약간 들면 보여야 하는 하늘의 줄무늬 선도 희미하게 보였다. 주위는 더 밝아 지고 내가 선 자리는 더 어두워 진다.
 침묵이 오래 갈수록 분노는 희미해져 갔다. 주위와 함께. 이 녀석과 함께. 깨야만 한다.
 나는 손을 번쩍 들어서 녀석의 머리를 집었다. 내 손은 커다랗지는 않지만 녀석의 머리는 약간 작았다. 한손으로도  충분했다. 힘이 점점 가해지고 이녀석은 비명을 질러야만 한다. 그래야 내 분노는 보상받는다. 녀석들 같은 종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망설임은 없다.

 "큭..큭큭."

 생각만해도 즐거운 비명에 상쾌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런 상태로 수십초가 흘렀다. 하지만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의아해 하며 녀석을 바라 봤지만 어째서!! 웃고 있었다. 이런 젠장할. 맥이 탁 풀려 버린다. 시발이라는 가벼운 숨소리와 함께 녀석을 던져 버렸다. 그리고 등을 돌려 집안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걷기 시작했다. 그때 녀석이 침묵을 깨버리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멍! 멍멍! 멍멍멍!!!"

 다음날에도 똑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언짢았다. 이미 바지는 흙투성이 발자국에 난자되어서 깊은 먼지를 품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세탁하는 군복이기 때문에 기분은 더 언짢아졌다. 게다가 머리통을 움켜쥐며 침묵을 흘리고 휙 던져 버려도 녀석은 다시 달려 왔다. 여전히 웃고 있었다.
 


 
by 이휴 | 2006/09/27 19:24 | 감정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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